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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부채감에 관해

네가 남긴 글을 잘 읽었어.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건데, 마치 빈 공책에 생각을 남기면 그 후에 다른 사람이 그걸 읽고 다시 글을 남기는 방식이 꽤나 매력적인 것 같아. 마치 필담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야. 이 글이 쌓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도 궁금해.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들고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을 만날거라는 부분을 읽는데, 난 조금 놀라기도 하면서 어쩐지 그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기도 해. 왜냐하면 일주일에 한 번 주고 받는 우리의 글이 마치 예전에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에 활동을 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그때의 기분 좋은 피로함과 한낮의 나른함이 동시에 떠올랐거든. 일주일에 한번씩 규칙적으로 반복적인 일과가 있다는 것은 남은 한주를 살아가는데 묘한 활력을 가져다주었던것 같아. 이를테면 활동이 끝난 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문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며 다음주에 보자는 약속 같은 것과 오늘도 수고했다고 선생님들과 인사하며 다음주에 보자 라고 말하며 헤어지는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한주의 중요한 약속이 되었던 것 같아.
하지만 이 약속이 나에게도 이상한 부채감으로 남을 때가 있었지. 특히 나는 함께 활동한 선생님들에게 부채감이 있었던 것 같아. 사실 무언가를 오래 하려면 부채감이나 책임감이 때론 그걸 지속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아. 물론 적절한 의식은 있어야 하겠지만, 부채감이나 책임감이 너무 커져버린다면 결국 더 잘하려고 하는 자신을 자책하게 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는 이 활동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만두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거지. 그런데 사실...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
토마토를 할 때, 나는 늘 잘해야한다고 생각했어. 유난히 느긋한 P간사님을 만난 덕분인지 나는 조금 더 일을 벌이고 토마토를 하는 시간 만큼은 예민하게 일정을 체크하곤 했어. 왜 그런 성격 있잖아, 친구들끼리 여행가면 혼자 지도를 보고 숙소를 체크하고 예약을 하는 성격. 평소에 나는 그렇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들에 신경쓰지 않으면 그 역할은 꼭 내가 하게 되더라.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혹시나 선생님들이 지루해하면 어쩌지 하고 조마조마 하기도 했지. 이를테면 작년에 가본 장소 보다는 새로운 활동 장소를 물색한다던지, 졸업식 전날이면 밤새 영상을 편집하고 상영해서 한 학기동안 수고한 선생님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어. 굳이 그럴필요가 없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꼭 해보고 싶었어. 하지만 그걸 혼자 하다보니 조금씩 지쳐 가더라고. 어떻게 보면 일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의욕만 앞서 나갔던 것 같아.
또 한번은 이런 경험이 있어. 활동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려는데 아무도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거야. 그때 나는 활동을 하면 꼭 뒤풀이를 한다고 믿었어. 내가 처음 토마토를 시작했을때는 거기에 있는 형, 누나들과 꼭 뒤풀이를 같이 했거든. 난 그 분위기가 좋았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 내가 전체적인 운영을 이끌어야하는 위치가 되자 갑자기 부담이 되더라고. 사실 난 뒤풀이 분위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막상 주도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어쩌다 몇 명을 데려가서 술을 마시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 당시에 너랑 만나서 토마토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면 활동가는 매력이 있어야한다고 자주 이야기 했던것 같아.
매력.
평소에 생각해 본적도 없던 손님이 동의 없이 불쑥 현관문을 열고 다가오는 느낌이었어. 처음 만나는 사람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활동을 꾸려나가기 위해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뒤풀이까지 해서 친목을 다지는 일련의 과정에 매력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하지만 늘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 나는 여전히 낯을 많이 가렸고, 어쩔땐 뒤풀이에 가고 싶지 않았고, 활동을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선생님을 보면 기분 나쁜 티가 나기도 했거든.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지만 어쩌면 매력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고 싶었던것 같기도 해. 부끄럽지만 당시의 나는 매력의 본질은 타인의 인정을 바탕에 둔다고 생각했고, 매력적인 언어와 가치관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잘 따를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야 사람들이 활동도 잘하고 뒤풀이까지 갈꺼라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내내 답답했던것 같더기도 해. 도대체 활동을 하는데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왜이리 많을까. 장애를 극복해야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인식해야한다고 교양시간에 말했지만 정작 내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사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부채감보다 이것들에 더 큰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어. 더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들을 잘 이끌지 못해서 다음 학기에 등록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것을 가장 걱정했지.
결국 나는 대학원 진학과 맞물려 토마토를 그만두게 되었고 다행히 다른 분이 맡아서 하게 되었어.  그 이후에 몇 번 찾아가기도 하다가 별 일 없이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지. 그러다가 대학원 생활을 바쁘게 하면서 점점 잊어갔던 것 같아. 같이 활동했던 선생님들과도 소식이 뜸해졌는데 우연히 얼마전에 한 친구와 연락이 닿게 됐어. 서로 안부를 묻다가 한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그 아이가 얼마나 귀여웠는지를 한참을 말했던 것 같아.
윤기야, 나는 그 친구의 입에서 함께 맡았던 아동의 이름이 나왔던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아. 그제서야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더라. 왜 그럴까. 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때의 기억이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온 것 같아. 나는 이제 내가 느꼈던 이상한 부채감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어. 그 이상함은 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도 맞닿아 있는것 같아. 아마 토마토학교를 했던 그 시절만큼 순수했던 시절이 있을까 싶어. 무언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그때만큼 열정적인 상태로 할 수 있을까? 반문해보면 지금은 그러기 쉽지 않은 것 같아. 나이가 들수록 투입하는 시간 만큼 어떤 성과를 원하게 되고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게 되는거지. 하지만 우리의 활동은 그렇지 않았던것 같아.
어떻게 보면 비생산적인 시간이 내 생활과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 했고 토마토학교를 했던 경험이 내 진로나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심지어 이제껏 토마토학교를 하면서 봉사시간을 인증해본적도 없었네. 그렇기 때문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오랫동안 활동을 했냐고 물으면 대부분 나이브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것 같아. 얼마전에 토마토를 거쳐간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왜 활동을 하게되었냐는 질문에 대부분  '그냥 좋아서' '아이들이 귀여워서' 와 같은 대답이 주를 이뤘던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느낀 이상한 부채감의 정체는 한때 나이브했던 시절에 생긴 마음의 결이 아닐까 싶어. 그건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 그러니 우리가 어떤 부채감을 느끼는 순간은 과거에 퇴적되어 쌓인 마음 속의 결이 고요하게 울렁이고 있다고 믿어.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난 아이들이 그립다거나 막 보고싶어서 갑자기 연락한다거나 하진 않아. 나에게 연락이 온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자신도 없고. 하지만 나에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한 풍경, 계절, 시간, 맞잡은 손에 대한 향수가 훨씬 짙게 남아있어.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토마토가 사라졌고 앞으로도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저, 누군가가 이걸 이어나가길 바라고 아이들이 선생님 손을 예전처럼 꼭 잡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언젠가 예전의 시간들이 그리울때 가끔 놀러갈 수 있는 곳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오늘도 전주는 가을장마가 계속되고 있네. 곧 백신을 맞을 예정인데 무탈하게 잘 맞아서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길 바래. 그럼 다음 글 기다릴게. 2021년 9월 6일, 회사 쉬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