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에게.
안녕- 간만의 편지를 쓰는 것 같네. 요새 이런저런 일이 많았어. 추석이 껴 있었고 이사 갈 집을 신중하게 알아보고 마침내 이사를 갔어. 몇 번째 이사였나 헤아려보다가 이내 포기했던 것 같아. 자주 이사를 갔던 편은 아니지만 이사를 하던 날은 엄청 피곤에 절어 있던 것 같아서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더라고. 이번 이사는 특히 회사를 다니고 있던 터라 힘에 부쳤던 것 같아. 자취하면서 들여놓았던 가구들의 규모도 커지고 자잘한 짐들도 늘어났거든. 언제까지 일진 모르겠지만 몇 년 동안은 지금 이사한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처음으로 구한 전세집인데다가 오래되었지만 넓은 집에서 살고 싶었거든. 괜한 사치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두지 않는 공간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더라고. 거기서 가끔 요가를 하거나 명상을 하려고 해.
그런데 이상한 경험을 하나 했어. 이삿날 아침에 짐을 다 빼고 텅 빈 집을 보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더라. 빈 공간이 주는 어색함이 낯설기도 했고 1년 남짓 잘 지낸 집을 떠나려니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어. 전에는 정신없이 나갔는데 이번엔 여운을 느껴보려고 사진도 좀 찍어보고 게으름도 좀 피워봤거든. 여느 때처럼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데 그동안 잘 살았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 집에도 감정이 있다는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사 이야기가 나오니까 예전에 나는 광진구에서 토마토 학교를 하다가 쉬는 기간을 갖고 금천구로 이사를 간 기억이 떠올라. 전엔 은평, 광진, 중랑 이렇게 3개 토마토 학교를 운영 중이었는데 나는 광진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었지. 사실 집에서는 은평이 더 가까웠는데 군대 가는 형이 본인 대신 나를 광진 토마토 학교에 소개하고 간 거였어. 난 뭣도 모르고 광진구에서 활동을 시작했어. 한 2년 정도 했었나. 점차 이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랑 같이 시작했던 친구만 남아서 매 학기 새로운 사람과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 그런데 뭐랄까, 그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 남들 다 하는 봉사활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봉사시간이 스펙이 되던 시절도 점점 끝나가던 때였고 나는 정작 봉사시간 한 번 신청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러다 좀 쉬고 싶었던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매번 똑같은 장소만 가는 것도 지루했고 새로운 교사 모집도 잘 안되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아. 그래서 고민을 좀 하다가 활동을 중단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지. 광진구 장애인 부모회의 내부 사정과도 맞물려서 쉬기로 했었던 것 같아
무엇보다 토마토 학교를 하는 것이 점점 일로 다가왔었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자문해 보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성의 변화가 온 게 아닐까 싶어. 이전에는 단순한 참여자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의 주최자가 되고 그러다 보니 비전문적인 능력은 그대로인데 감당할 규모나 역할이 늘어난 게 아닐까 싶어. 사실 이 부분은 역할 분담이 더 제대로 되었다면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을 텐데... 그러니까 애초에 그 규모에 맞는 활동을 수행했어야 했는데 내 욕심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 비전문성, 다시 말해 아마추어적인 돌봄의 역할과 한계도 있었던 것 같아. 언젠가부터 교사는 늘 모자랐는데 아동은 그대로였고 한 사람이 2명의 아동을 돌보는 형식이 되곤 했어. 그러니 지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일로 다가온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말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용당한다는 느낌엔 정말 다양한 결이 있는데 말이야. 어쩔 땐 이용당하는 게 자기 효능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화딱지나 게 기분 나쁘기도 해. 이 이야긴 다음 편지에 더 자세히 하는 게 좋을 듯해.
한편으로는 과연 활동에 있어서 전문성이 중요할까라는 생각도 들어. 토마토 학교의 활동이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혹은 돌봄이라는 영역 자체가 전문성이 필요한 걸까? 물론 짝꿍 교사로 오는 사람 중에는 사회복지학과나 특수교육 전공으로 오늘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전공과 무관하게 오는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전공을 했다고 아이들과 잘 지내거나 활동을 오래 지속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럼 우리의 활동에서 중요한 건 뭐였을까? 글쎄... 이건 너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네. 실은 활동을 할 때에는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그냥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것이 활동을 지속하는 밑거름 일 수도 있어. 다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 오늘 활동의 구성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미안함. 고작 일주일에 하루 한나절 같이 있는 동안에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미안함. 실은 말 잘 듣고 의사소통이 원활한 아이와 활동하고 싶은 미안함 같은 것들이 오히려 지속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어.
그나저나 나도 은평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당황했었어. 그 친구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면 아마 책임감을 너무 크게 느낀 게 아닌가 싶어. 동료들과 그런 고민과 불안을 나누고 해소했다면 좋았겠지만 결국 잠적이라는 방법을 택해버린 거지. 안타까운 일이었어. 너의 말대로 일로 다가온 점. 일이 주는 막연한 불안 같은 것. 그것들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쉽게 나누지 못한 점은 나의 활동도 그랬기에 아쉬움으로 남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친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인 것 같아. 좋게 보면 너의 간사직을 이어 받았지만 과도한 활동이 일로 되어서 부담을 못 이겨 떠나 친구고, 나쁘게 보면 책임감 없이 도망친 사람이 되는 거잖아. 그런데 난 실은 그 친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건 관심이 별로 없어. 물론 처음에 애 뭐야 갑자기 - 하며 조금 툴툴거리긴 했겠지만 말이야. 그보다 남은 사람들이 더 눈에 밟혀. 이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살까. 지금 만들고 있는 책을 기다리고는 있을까? 아 그럼 더 잘 만들어야겠다, 하는 그런 생각.
그러니까, 남을 평가하고 일보다는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더 어려운것 같아. 내가 그 친구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는 건 쉽지만 내가 만든 결과물로 남에게 비판받는 것이 더 나에게 남는 게 많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이 글이 내용이 별로이다거나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한다는 피드백이 결국엔 나에겐 훨씬 유용하다는 거지. 그래서 난 우리의 서간문이 어떻게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봐주는지 궁금해. 그 점에서 네가 우리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한다는 글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읽었어. 어떤 피드백을 들려줄지 나도 무척 궁금하거든. 아무튼 내가 너라면 난 그 친구한테 먼저 연락 안할 것 같아. 먼저 연락온다면 몰라도. 그러니 너도 그 A라는 친구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번 편지는 많이 늦어서 미안해. 벌써 계절이 가을로 바뀌고 내가 기르던 고양이의 덩치는 자꾸만 커져가네. 그만 자라야 할 텐데. 가끔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면 몸길이가 1미터는 되는 것 같아. 몸을 뒤집고 걱정없이 낮잠 자는 녀석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는 걸 느끼는 요즘이야. 그럼 다음 편지 기다리고 있을게.
10월 초입에서, 셀프 리모델링을 시작한 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