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토마토학교가 문을 닫은 건 2019년의 일이었어. 여러가지 감정으로 기억되는 일이야. 종종 형과 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형은 늘 실소했던 것 같아. 나 또한 황당해서 웃음이 나오고는 했어.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뒤이어 여러 얼굴들이 떠오를 때면 서서히 웃음이 가셨어. 은평토마토학교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난 적이 없어.
어쩌다 문을 닫게 된 걸까. 이 질문에 관하여는 추후에 다시 말해보고 싶어.
나는 은평토마토학교의 간사로 일했어. 어쩌면 이게 형과 내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몰라. 내게 토마토학교는 자원활동인 동시에 직장이기도 했으니까. 토마토학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나는 조직 운영의 차원을 더 고민했던 것 같아. 이를 테면 어떻게 해야 토마토학교라는 조직을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으레 그렇듯 결국 더 자주 보는 아이들에게 그만한 정이 더 쌓였던 것 같기도 해. 어떤 아이의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어떤 아이에게만 말을 더 여러 번 걸었던 것 같아.
떠오르는 아이가 한 명 있어. 난 이 글에서 그 친구를 옐로라고 부르려고 해.
옐로는 다운증후군이었어. 내가 은평토마토학교의 간사로 부임하기 전부터 이 곳에 참여하던 아이였어. 옐로는 나와 눈을 맞추는 일이나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는 게 가능했어. 대신 발음이 어눌해서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잦았어. 옐로가 말할 때면 나는 고개 숙여 귀를 기울이거나 아니면 상황과 맥락으로 옐로의 말뜻을 파악했어. 돌이켜보면 알아듣는 척 했던 게 아닌가 싶어. 아이의 말을 여러 번 되묻는 게 아이에게 스트레스일까봐 걱정됐거든. 종종 옐로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기도 했어. 나는 옐로와 내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늘 의심해야 됐어. 그 아이의 마음 속 세계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는 언제나 상상의 영역이었으니까.
언젠가 아이들에게 하나둘씩 휴대폰이 생긴 적이 있어. 덕분에 짝꿍교사와 아이들은 토마토학교를 하지 않는 날에도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거지. 아이들은 채팅방을 만들어서 짝꿍 선생님들을 초대하고 자신의 하루 일과를 소개했어. 예를 들어 오늘 먹은 반찬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들. 문득 토마토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늘 '저기로 가자', '이건 만지면 안돼' 같은 말만 했던 게 아닌가 싶어. 과연 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려고 했던 게 맞을까. 그 무렵에 옐로가 내게 보낸 메세지를 마음 깊이 간직해. 옐로는 천천히 한 글자씩 메세지를 보내왔어.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이었어. 나는 그 아이가 휴대폰의 자판을 서투르게 두드리는 모습을 떠올렸어. 옐로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옐로에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난 알게 된 거야.
아이들은 채팅방에 수 년 전에 활동했던 짝꿍 선생님을 초대하기도 했어. 아이들은 그 선생님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지만 난데 없이 한 곳에 모여버린 짝꿍 선생님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 처음에는 제각각 아이들의 메세지에 정성껏 답장을 보내다가 하나둘씩 방을 나갔어. 아이들의 메세지가 너무 자주 올라오면 선생님들은 답장이 느려지거나 어느 순간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어. 다만 나는 이런 상황이 자꾸 난처하고 미안하게만 느껴져서 이상한 부채감으로 열심히 답장을 보냈던 것 같아.
이제와서보니 그 때의 난처함은 발달장애아동과 내가 형성하는 관계란 여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발달장애아동과 내가 사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거든. 토마토학교에 찾아오는 선생님들은 저마다 미리 상상한 역할과 관계들이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해맑게 웃는 아이들과 마음씨 좋은 선생님의 관계 같은 것 말이야. 아이들과 사적인 농담을 주고 받는 친구사이가 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을 거야. 어쩌면 이건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과도 닿아있는 문제 같아. 우린 여전히 장애인을 자주 만나보지 못한 거였어.
나또한 토마토학교를 영원히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이런 말도 조금 우스울지 모르겠어. 너무 당연한 말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십 년 후, 이십 년 후를 상상할 때면 뜻모를 부채감이 느껴졌어. 전철에서 성인 남성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겁이 난다던 선생님들이 떠올라. 사실 나도 그랬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고 그게 위협적으로 느껴졌어. 우리가 토마토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언젠가 성인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이 간극이 나는 여전히 낯설어.
최근에는 은평구로 이사를 왔어. 인연이라면 인연이야. 새 살림을 차린 동네가 하필 은평이라는 게. 문득 동네를 오고 가다가 은평토마토학교를 같이 하던 아이들이나 부모님을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애초에 내 성격이 그렇지만, 내가 그 순간 환하게 인사할 수 있을까. 인연이랄 게 하나 더 있어. 하필 은평으로 이사를 갈 즈음에 옐로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 한 2년만이었을 거야. 수 년 전에 처음 휴대폰을 샀을 때처럼 옐로는 자신의 일상다반사를 보내왔어. 수 년만에 받은 연락이 무척 반가웠어. 나도 내 일상을 알려주게 되더라고. 며칠 전에 다녀온 식당, 여름휴가 때 보고 온 바다풍경 같은 거. 그런데 은평구로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전할 때는 조금 망설여졌어. 만약 옐로와 내가 다시 만나면 우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옐로는 다 자란 성인일 텐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어.
여전히 고민 중이야. 이후로도 옐로는 자주 메세지를 보내. 아무 말도 없이 똑같은 이모티콘을 연달아보낼 때가 많고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헷갈리고는 해. 나도 똑같이 이모티콘을 줄줄이 보내는 일은 너무 성의 없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 아이가 서운해하면 어쩌지. 문득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메세지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졌어. 그분들은 어떤 답장을 보내고 있을까.
옐로와는 몇 가지 일이 더 있었어. 한 번은 옐로가 영상통화를 건 적이 있어. 그때 나는 회사에 있었는데 잠깐 복도로 나와서 옐로의 전화를 받았어. 영상으로 본 옐로의 얼굴은 예전과 똑같더라고. 내가 잘 알던 옐로의 표정이었어. 그리고 옐로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그대로였어. 또 며칠 뒤에는 옐로의 가족 단톡방에 나와 다른 선생님들이 초대된 적이 있어. 몇 분 뒤에 옐로의 아버님께서 내게 메세지를 보내주셨어. 옐로가 우리를 잘못 초대한 거 같다며 단톡방에 나가주시면 감사드리겠다는 말이었어. 난 옐로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고 우린 기분 좋게 대화를 마쳤어. 그때 아버님의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 옐로가 무언가에 열중하며 연필을 쥔 사진이었어.
어쩌다보니 나는 성인이 된 옐로를 알아가는 중이야. 여전히 옐로와 내가 다시 만난다면 우리가 어떤 사이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이 고민을 계속 이어가보고 싶어. 형의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해. 내가 느꼈던 부채감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난처함 같은 것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느끼던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마음에 관한 글을 써서 책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그게 내가 만나던 아이들을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엇이 되었든 나는 이 책을 들고 옐로를 만나고 싶어. 긴 시간이 흘러서라도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껴.
알다시피 이 글은 일기처럼 썼던 것을 편지글로 바꾸어 쓴 거야. 읽는 이를 생각하며 쓰는 글은 마음이 더 따뜻해지네. 한 시절을 같이 회상할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좋은 일 같아. 이어지는 글을 기다리고 있을게.
외근지로 가는 택시 안에서
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