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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토마토학교는 발달장애아동과 자원활동교사가 짝을 지어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소풍을 다니며 10주 간의 시간 동안 정서함양 교육을 진행하는 놀이활동 단체이다. 토마토학교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이천 년대 초반으로 알고 있다. 내가 활동을 시작한 건 이천십삼 년이다. 벌써 팔 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자원활동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이 년 뒤에는 직업이 되어있었다. 나는 토마토학교의 은평 지역 간사로 일했다. 간사라는 직함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알아보니 한자로 도울 간을 쓰는 단어였다. 서포터 정도의 뜻이 아닐까 싶었다. 막상 서포터보다는 총괄에 가까운 직책이었다.
간사로 일하며 토마토학교를 소개할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돌려쓰던 단어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정서함양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토마토학교의 목표는 발달장애아동의 정서함양에 있다. 그런데 문득 이 정의가 내 멋대로 생각한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부터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을 소홀히 대했다는 뜻은 아니다. 토마토학교를 하는 동안 나는 단지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일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비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사실은 토마토학교의 좋은 점이면서도 아쉬운 점이 된다.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은 올해 초의 일이다. 이것도 벌써 칠 개월이 지난 셈이다. 어느 날 토마토학교의 십수 년 간의 이야기를 엮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처음에는 토마토학교의 선한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함께 책을 만들 사람을 모으고 회의를 했다. 횟수가 쌓일수록 질문은 다시 찾아왔다. 우리는 왜 이 책을 만들까? 이 질문은 좀 더 큰 범주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애당초 나는 왜 토마토학교를 시작한 걸까?
한동안 이런 질문에는 꽤 쉽게 대답했다. 아마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외로웠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토마토학교라는 곳을 막 알게 되었을 때의 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채 재수도 무엇도 아무런 계획이 없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때 나는 한창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던 기억도 있다. 같은 교회의 친한 형이 토마토학교를 소개해준 일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첫 활동을 마치고 가진 뒤풀이에서 다른 자원교사들이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토요일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자원교사들은 대학생이 대부분이었고 주중에는 수업을 듣느라 바쁘니 약속을 잡을 날이 주말뿐이라는 말이었다. 토마토학교에 나가는 토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으니 아쉽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눈치가 보였다. 내게는 수업을 듣느라 바쁠 일도 없고 주말에 만날 친구도 없었다. 부끄럽고 불안해서 눈을 맞추지 못했다.
어쩌면 이 소외감 같은 것이 내가 토마토학교를 계속 하게 된 이유일지 모른다. 토마토학교에서 만난 사람들로 하여금 나 또한 내 또래의 스테레오 타입에 들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이윽고 간사가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 역할과 나의 자리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내 안의 열등감은 토마토학교에서 맺는 또 다른 무수한 관계들 속에서 점차 사그라졌다. 우리들은 자주 모여 웃고 떠들었다. 그 시절에 나눈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만큼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도 많은 느낌이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는 걸 느낀다. 이를 테면 우리가 만나던 아이들은 왜 토마토학교를 하게 된 걸까. 그에 관하여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짐작은 하고 있다. 전염병으로 이 활동을 쉬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짐작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도 짐작해본 적이 여러 번이다. 소통이 어려운 중증의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아동과 대화할 때는 늘 짐작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꼭 아이들에 국한한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봉사라고 부르듯이 어쩌면 가져갈 게 없는 이 활동을 계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는 여러 번 짐작해보았다. 왜 이 사람들은 여기 남아있는 걸까. 그리고 이런 짐작의 끝은 매번 그들도 나와 같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 속에서도 늘 그 아이의 마음이 나와 같기를 바랬다.
공들여 글을 써보려 한다. 이건 토마토학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어지는 글에는 토마토학교를 하며 내게 남은 짐작들을 담아보고 싶다. 그 모양새가 어쩌면 우리들이 함께한 시절,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아이들에 대한 많은 질문의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뜻 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