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아.
며칠 사이 조금 바빴어. 작은 박람회를 열고 닫았거든.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일손이 적었어. 더구나 요새는 전염병 탓에 뭐든 비대면으로 치루잖아. 우리 행사도 유튜브로 생중계를 했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더라. 실은 요 며칠 분위기가 조금 흉흉했어. 직장에 안 좋은 일이 생겼거든. 그 탓에 일 년 동안 함께 일한 직원 두 명은 계약 연장이 안될 것 같아. 아직 두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아.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일감을 주는 게 미안해지더라.
그리고 말야. 여기서 나도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상상을 하고는 해. 먹고 사는 일은 참 불안스럽지. 이래저래 심란한 며칠이야.
문득 내 불안과 토마토학교의 기억을 겹쳐보게 돼. 매일 저녁이면 내일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지는 마음. 글쎄. 그게 토마토학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토마토학교를 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가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실들, 대충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해. 요새는 아이들의 눈빛이나 미소보다 부모님들의 마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그들의 하루하루는 어땠을까. 그러니까 발달장애아동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괜히 말이야. 그 마음들을 먹고 사는 일의 고달픔 따위로 퉁치고 싶어지나봐. 이제 나도 조금은 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토마토학교를 하던 때의 나보다 지금 더 어른스러워졌다고 말이야.
우리 각자 글을 쓰기로 하며 토마토학교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하나씩 고르기로 했지. 떠오르는 사진이 한 장 있었어. 중랑구에서 활동하며 찍은 사진이야. 찍자마자 즉석 인화기로 조그맣게 뽑아서 지갑에 넣고 다녔어. 여태 그게 남아있더라고. 이삿짐을 싸며 다시 찾았거든. 지금은 새로 산 서랍장 한 켠에 붙여놨어. 사진 속 얼굴들은 모두 웃고 있어. 벌써 칠 년 전 일이네. 그 중 몇 명은 간간히 연락이 닿기도 해. 또 한 명은 같은 집에서 살기도 하고. 새삼 사람들이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보기에 나도 한결 같겠지. 어딘가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는 기분이야.
사진을 찍은 곳은 교통공원이었어. 조그만 공원에 놀이터 대신 면허 시험장처럼 생긴 작은 도로들이 있었어. 아이들은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갔어. 그때 우리는 토마토 면허증이라는 걸 발급해주기로 했어. 아침 일찍 가위질을 하며 아이들에게 나눠줄 면허증을 미리 만들던 모습이 떠올라. 짝꿍교사들은 아이들의 안장을 꼭 잡고 도로를 완주할 때까지 함께 뛰었어. 별 것도 아닌데. 토마토 면허증을 받은 아이들은 폴짝 뛰며 좋아했던 것 같아. 지금쯤은 모두 잃어버렸겠지? 또 모르지. 내가 찾은 단체사진처럼 어디 짐더미 아래에 깔려있을지도.
그때 나도 한 아이의 안장을 잡고 도로를 같이 뛰었어. 그 친구는 자전거를 많이 타봤는지 겁이 없더라고. 더 빨리 달리자고 노래를 불렀어. 그래서 힘껏 안장을 밀어주며 가는데 그만 코너에서 무게중심이 틀어진 거야. 아이랑 나는 자전거 채로 같이 엎어지고 말았어. 나는 아이가 울음이 터지거나 기분이 상하면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그 친구는 의젓하게 바지를 털며 일어나더라고. 괜히 민망한 마음에 나는 보험처리를 해주겠다는 이상한 농담을 던졌어. 교통공원이기도 하거니와 갑자기 상황극이 하고 싶었나봐. 보험사에 보내야 하니 사진을 찍자며 나와 그 아이는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었어. 그때 그 아이가 한 말이 기억나. 이럴 거면 빨리 안 달려도 돼요.
기억을 되짚을 수록 말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 얼마나 어른스러워진 건지 되묻게 돼. 토마토학교를 열심히 하던 때는 지금보다 유약한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더 어른이 된 걸까. 어른이고 말고는 모르겠어. 다만 여럿이 모여서 토마토 면허증을 가위질하던 그 분위기가 참 좋았어. 같은 마음이 갖는 힘이라는 게 참 커다랗지 싶어. 어쩌면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같은 마음이랄 게 없어서 괜시리 시니컬해지는 게 아닐까. 먹고 사는 일 같은 말을 꺼내며 그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따져보려던 게 아니었나 싶은 거지. 사실 아무 의미 없어도 좋잖아. 이렇게 쿨하려면 같은 마음인 사람이 둘셋은 옆에 붙어있어야 할 것 같아. 갑자기 나 혼자 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그래서 이벤트라는 말을 곱씹어보려고. 우리 책의 제목이 되겠지? 이벤트라는 것. 여러 사람이 난 데 없이 한 데 묶이는 거. 불안을 조금은 덜어놓을 수 있는 방법이랄까. 말할 수록 토마토학교에 대한 기억이 장애인권 같은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야. 과연 발달장애아동이 아니고서도 우리들이 한 데 묶일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은 혹시나 발달장애아동을 대상화하는 것일까. 여전히 남는 물음들이 있지만. 이건 확실한 것 같아. 오랜만에 꺼내본 단체사진이 참 좋아.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걸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