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회사에서 워크숍 키트를 나눠줬어. 일에 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내게 맞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어. 일주일에 한 챕터씩, 다 해서 5주가 걸리는 워크숍이었어. 되게 체계적인 과정이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까보니 별 게 없더라. 어쩌면 너무 많은 걸 기대했었나봐. 실은 일 고민이 많은 참이었거든. 마침 애인도 새 일을 준비하는 시기여서 우리는 워크숍을 같이 해보기로 했어. 오히려 키트를 플레이할 때보다 워크숍을 마치고 둘이 대화를 나눌 때 느끼는 바가 더 많더라고. 일에 대한 서로의 철학이 정말 많이 달랐던 거야. 나는 일을 할 때 그 안에서 꼭 의미를 찾아야 하는 성향이야. 반면에 애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타입이었어. 어쩌면 이런 성향 차이처럼 토마토학교에 관한 기억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인상으로 떠올리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야. 괜히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본 문장이 떠오르네. 또 나만 진지해?
형이 쓴 편지를 읽으며 계속 웃음이 나왔어. 공감이 정말 많이 됐거든. 몰래 회사에서 읽었는데 자꾸 웃어서 딴짓을 들킬까봐 눈치가 보였어. 특히 토마토학교가 일처럼 느껴졌다는 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 그게 꼭 토마토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은 것 같거든. 생각이 길어지더라고. 일처럼 느껴진다는 게 무슨 뜻일까. 막연히 일이라는 말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해. 그래서 토마토학교가 하기 싫은 일이었나 하면 또 그렇진 않거든. 어딘가 애증의 대상 같기도 해. 지난 번에 내가 쓴 편지에서는 토마토학교를 회고하는 일이 너무 반성과 성찰로만 흐르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했었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이야. 난 토마토학교가 좋고 여기서 느낀 좋은 점에 관해서도 말해보고 싶어.
그러니까 조금 낯간지럽지만 토마토학교의 의의랄까? 그런 것들 있잖아. 이를 테면 형이 내 생각이 궁금하다고 했던 거. 우리 활동에서 중요한 건 뭐였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비전문성이라고 말했을 것 같아. 처음으로 토마토학교에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늘 비전문성에 대해 말했었거든. 우리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고 말이야. 잘 꾸며 말하면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정말로 아마추어들이었어. 형말대로 특수교육을 전공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아니었으니까. 대부분 발달장애에 대해 학문적인 이해를 갖고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었어. 어째서 자폐증이란 말대신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라는 표현을 쓰는지에 관해서는 나도 한참 뒤에 알았던 것 같아.
다만 나는 도리어 비전문성이 토마토학교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 발달장애인이 시설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면 생활에서 만나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발달장애에 관한 비전문가일 테니까. 미숙한 자원교사와 발달장애아동이 상호작용을 하며 만들어가는 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약속들이 토마토학교의 귀중한 결실이라고 믿었어.
어린이대공원에는 정문 앞에 길게 늘어선 좌판이 있어. 그 자리에서는 닭꼬치나 솜사탕 같은 걸 팔았을 거야. 꼭 아이들은 그 앞을 지날 때면 간식거리를 사달라고 투정을 부렸어. 그래서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날에는 선생님들끼리 미리 약속을 했던 것 같아. 아이들이 간식에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좌판에서 멀찍이 떨어져 걷자거나 하는 약속들.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던 교사들이 기억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고, 무엇을 해도 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만약에 우리가 조카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갔다면 닭꼬치나 솜사탕을 사주지 않았을까? 실은 헷갈리는 일이긴 해. 정말 우리가 비전문가라면, 그래서 아이들과 단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따름이라면, 왜 아이들이 어린이대공원의 좌판을 보지 못하게 했던 걸까. 이런 약속에는 어딘가 교육과 통솔의 뉘앙스가 느껴지잖아.
어쩌면 비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에서 길을 헤맸다는 생각도 들어. 사실 내겐 토마토학교가 정말 일이었지. 그때 나는 토마토학교의 모기관(이라고 해야 할까?)이었던 한기연의 간사로 일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나는 우리가 더 전문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은평토마토학교가 문을 닫고 난 뒤에 말이야. 적어도 나는 특수교육이나 장애인권에 대해 더 공부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시절에 내가 자원교사들에게 했던 말들이 너무 부끄러웠거든. 이제는 비전문성이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들이 환상처럼 느껴져. 그래서 토마토학교는 무엇을 위한 활동일까. 여기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 걸까. 만약 내가 다시 은평토마토학교를 운영한다면 사전 교육이나 활동 회고에 더 공을 들일 것 같아. 당연히 모든 사람이 전문가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비전문성이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말을 더 하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돼. 토마토학교가 일이 되면 안 되는 걸까. 사실 우리가 만들려는 매뉴얼북은 그야말로 업무적인 콘텐츠 같거든. 토마토학교가 일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뜻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건 좋은 방향이 아닐 거야. 다만 앞서서 토마토학교에서 대상화하지 않는 일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아무리 봉사활동이란 말 대신 자원활동이란 말을 쓴다고 해서 말이야.
물론 토마토학교에서는 대상화를 넘어선 순간들이 있었어. 말하자면 일이 아니게 되는 순간. 아이들과 서오릉의 풀밭에 누워서 게으름을 피울 때이거나 짝꿍아동과 손을 잡고 선유도공원의 산책로를 하염없이 걸을 때. 다음 편지부터는 그 순간들을 떠올리고 글로 남겨보려고 해. 대상화를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가 궁금해졌어.
길고 두서 없는 편지를 이만 마칠게. 처음에는 정말 편지처럼 시작한 글이었는데 점점 욕심이 늘어나는 것 같아. 다음 편지를 쓸 때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이 되어보고 싶어.
그럼 다시 연락할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늦은 밤, 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