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예배당을 찾았어. 기도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건 수 년 전의 내 모습이었어. 그때 나는 커리어를 쌓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거든. 언젠가 토마토학교에 관하여 형이 쓴 표현이 기억나. 효능감이라는 말. 나는 그게 절묘하다고 느꼈어. 내가 토마토학교를 한 데에는 내 쓸모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 자주 불안했고 그만큼 벌여 놓은 일이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열심히 살았네.
그래서 나는 지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었지만 마음 잡고 글을 쓴 지는 너무 오래 되었어. 예전만큼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가지 않아. 어쩌다 보니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고 있기도 해. 그 덕에 내 감수성을 지킬 수 있었어. 토마토학교를 하지 않았다면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었을까. 이제는 정말 토마토학교가 사라졌다는 느낌이야. 코로나19로 쉬어 간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 시간이 일 년을 넘어간다는 게.
그런데 말이야. 불안하지가 않은 거야. 부끄러우면서도 참 마음 편한 일이기도 하지. 분명 나는 꿈꾸던 모습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런데 어째서 불안하지 않을까. 예전처럼. 혹시 자기 쓸모를 찾는다는 건 꽤 보잘 것 없는 일인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한껏 불안했던 그 시절의 내가 더 볼만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으니. 자꾸 되묻게 돼. 불안이란 무엇일까. 솔직히 나는 가물가물한 사람들과 토마토학교를 이어가던 그 시절이 그리워. 불안이란 것이 꼭 나쁜 게 아닐지 몰라. 그러니 토마토학교를 회고하는 이 긴 글은 한 시절의 불안에 새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될까.
형이 했던 말처럼 같은 시간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같은 마음의 결이 남는 듯해. 그 결에 관한 이야기가 토마토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겠어.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일지라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을지에 관한 고민은 놓지 않으려고.
사실 부채감에 관하여는 서로 다른 결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어쨌거나 나는 말이야 토마토학교를 다시 떠올리면 문을 닫던 순간을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 알다시피 내가 일하던 은평토마토학교는 갑자기 해산하고 말았으니까.
어떤 이유로 은평토마토학교는 없어진 걸까.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어. 은평토마토학교가 문을 닫는 날부터 지금까지. 처음에는 한 사람을 원망했던 것 같아.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 모든 일이 그렇듯 은평토마토학교가 사라진 일에도 한 가지 원인만 있지는 않을 거야. 겉보기에는 그 당시 간사로 일하던 친구가 연락이 두절된 것이 이유겠지만 그 말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 질문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중요한 건 왜 이 활동이 우리에게 부담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이 아닐까 해.
은평토마토학교가 문을 닫던 순간에 나는 군대에 있었어. 부대에서 전화를 받았고 그때 간사로 일한던 친구 A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이었어. 기억하기로 그날은 토마토학교에서 겨울캠프를 가는 날이었어. 자원교사들이 하룻밤 짐을 싸서 역 앞에 모여있었다고 해. 그런데 아이들이 한 명도 오지 않는 거야. 뒤늦게 아이 한 명이 왔고, 부모님께서는 겨울캠프에 관해 전혀 공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어. 친구 A가 공지 연락을 돌리지 않았던 거야. 그날 친구 A는 나타나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다행히 건너서 소식을 전해들은 적이 있어. 나쁜 일이 생겼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남은 사람들은 고민했어. 겨울캠프가 엎어지고 다시 새학기를 준비해야 했는데 선뜻 간사를 맡겠다는 사람은 없었거든. 그들과 나는 전화로 고민을 주고 받으며 입장을 정리했어. 은평토마토학교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어. 아무도 이 단체를 이어 받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사실 정해진 답이기도 했지. 남은 사람들끼리 수십 개의 연락처를 나눠 갖고 이 모임이 오늘부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했어. 나는 그 무거운 일에 참여하지 않았어. 군대에 있으니 연락을 돌리기 어렵다고 변명했어. 어떤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너무 무책임하다며 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난 수 년이 지나서야 알았어.
과연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토마토학교에 관한 책을 만들기로 마음 먹고서는 가장 먼저 은평토마토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은평토마토학교가 문을 닫을 때 함께 한 교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어. 누군가에게는 3년만에 보낸 연락이기도 했어. 우린 모여서 밥을 먹기로 했고 은평토마토학교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각자의 기억을 꺼내보기로 했어. 서로의 기억이 조금씩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여태 나는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친구 A를 원망하기에 바빴어. 그런데 막상 우리들의 기억을 맞추어 보면 은평토마토학교가 사라진 게 꼭 친구 A의 탓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비오는 날에 우리들은 오래된 카페에 둘러 앉았어. 처음 토마토학교를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날까지 각자의 기억을 말했어.
새삼 다시 확인한 점은 우리가 토마토학교를 일로 여겼다는 거야. 모두 지쳐 있던 것 같아.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불안을 느꼈어. 자원교사들이 다음 학기에 모두 그만두면 어쩌지. 그때 우리는 억지로 뒤풀이를 열고 어색한 수다를 떨었어. 단지 아이들과 짝을 지어서 유원지를 가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활동일 따름인데. 괜히 우리는 성과주의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야. 한 친구는 그때를 떠올리며 토마토학교를 한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어. 이렇게까지 자신의 긴 시간을 써야했던 일일까 싶다는 거야. 어째서 우리는 토마토학교를 하며 쫓기는 기분을 받았던 걸까.
아무래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 토마토학교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고 말이야. 이 활동을 평생 할 사람은 없었어. 우리를 이어서 토마토학교를 맡을 사람도 없었어. 그러니 우리가 멈추는 순간 이 긴 활동도 그대로 멈춰버리는 거야. 어쩌면 수 년만에 온 옐로의 문자는 뒤늦게 펼쳐지는 토마토학교의 다음 장면 같아. 옐로를 찾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과 우리가 만든 책을 건네주겠다는 조심스런 생각은 아무래도 미뤄둔 과제를 되푸는 일일 거야.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돼. 첫째는 친구 A에 대한 생각.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 지금은 친구 A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내가 사과할 일이 있진 않을까. 물론 그 아이에게 잘못이 없다고는 못하겠어. 다만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있어. 둘째는 나의 글들이 너무 반성과 후회로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은 염려야. 우리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가볍게 시작한 글이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책임을 느껴. 토마토학교의 소중한 가치들에 관하여서도 형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은평토마토학교에 대한 기억을 나눈 날. 나와 친구들은 서로가 느낀 불안에 대해 털어놓으면서도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어. 여전히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기억이야. 이 미묘한 결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요새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어져.
형의 글도 기대하고 있을게.
부쩍 날이 선선한 구 월의 저녁. 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