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드디어 마지막이네. 마지막 편지를 두고 나도 알게 모르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 정말로 후회와 추억만 남은건 아닐지 사실 나도 약간 걱정이 되었나봐. 짧지 않은 시간동안 책상에 앉아 꾸준히 글을 쓰면서 매번 처음을 생각해보았어. 왜 이 편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야. 너는 은평토마토가 갑자기 사리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제대로 끝을 내지 못했던 후회가 있었던 것 같아 보였어. 하지만 편지를 주고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토마토학교가 없어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지. 아마 그 사이에 과거와 연결된 기억을 회상하며 스스로 어떤 의미를 깨달은듯해. 앞으로 넌 너의 삶을 잘 가꾸어 나갈거라 믿어. 토마토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니 기뻐. 더 소중하게, 더 예민하게 그 시간들을 퍼 올리길 바랄게. 마치 흙속에 담긴 씨앗을 조심스럽게 다른 화분으로 옮겨담는 것 같아.
난 이제 토마토학교의 시작을 상상해보곤 해. 왜 만들어졌을까 하고 말이야. 처음엔 내가 왜 시작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너와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내 질문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 뭐랄까, 그게 어떻든 크게 상관 없어진 것 같아. 이유야 몇 가지 있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을만큼 사소하기도 하고 현재의 내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아. 그보다 이 활동이 어떻게, 왜 시작되었을까에 주목하기 시작했어.
그러게 왜 시작했을까. 문득 생각나는 건데 내가 이 이야기를 너에게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참 학교를 휴학하고 한기연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었어. 그땐 태어 날 때부터 믿었던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과 희의감이 삶을 지배할 때였어. 그러다 간사 중 누군가 내게 예배에 나오라는거야. 그런데 예배장소가 특이했어. 재능교육 사옥. 난 처음에 무슨 신우회 인줄 알았어. 그래서 근처에 도착해서 몇 층으로 가야하나 물어봤어. 그러자 길 위에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간사님이 보였지. 그땐 충격이었어. 사실 그건 예배를 가장한 집회였어. 알고보니 한기연은 재능교육에 일어난 부당한 사건에 연대하는 단체 중 하나로 참여한거였어. 물론 집회를 가장한 예배이기도 하지. 하지만 난 빠르게 그 예배, 즉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를 좋아하게 됐어. 갑갑한 교회 밖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상한 해방감이 들었지. 내가 알던 모든 것이 흔들렸지만 난 그게 옳다고 느꼈어. 그리고 그제야 내가 살던 세계는 갑갑하지만 안전했고 평화롭지만 고립되어 있었다는걸 알게 됐지. 난 예배의 형태로 집회를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까지 해서 한동안 여러 현장을 쫓아다녔던것 같아. 그러다 토요일엔 토마토학교를 했지.
난 당연히 토마토학교에 나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집회에 참석할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대부분 집회 참석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지. 아마 나도 모르게 스스로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졌던 것 같아.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지. 처음엔 집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한기연은 사실 기독교 운동을 하는 단체인데, 그러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을 꼬셔서 쪽수를 채워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 우린 활동을 통해 차별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장애를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토마토에 참여한 사람들을 집회를 데려가려고 했어. 하지만 번번히 어떤 턱을 넘지 못했지. 실은 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 집회에 나간다고 뭐가 바뀌나 하고 말이야.
한번은 같은 학교를 다니던 교사를 학교에서 만나 집회에 데려가려고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어. 그런데 난 그 사람과 헤어질때까지 집회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어. 그보단 연애이야기, 학교 생활, 취업 고민과 간간이 토마토 학교와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돌아간것 같아. 나는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사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서 묘한 활력이 돌기도 했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난 활동가 체질은 아닌가보다 하고 단념했지.
꼬시는게 참 어렵구나.
전에도 썼지만 그래서 활동가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착각했지. 개인에게 매료되는 것은 결국 길게 보면 순간에 지나지 않아. 매료되었던 대상은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지점에서 날 질리게 만들기도 했거든. 그래서 지금은 그렇지 않아. 어쩌면 토마토학교는 사람을 꼬시는 선의의 거짓말로 시작했을지도 몰라. 그러기 위해선 매력적으로 보여야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명이라도 집회에 데려가기 위해, 한명이라도 이 사회가 어떻게 차별과 혐오를 원천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 처음부터 의도를 말하지 않는건 그건 그만큼 쪽수가 부족하고 여력없는 상황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해. 난 가끔 처음 길 위에 예배에 초대한 간사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그 사실을 인지할때마다 괴로웠어. 사람을 수단으로만 생각한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하지만 너와의 편지를 마무리 할때쯤 그건 일종의 열악함의 결과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어.
그래서 난 너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어. 혹시 금천에 토마토학교를 만든다면 거기에 나온 교사들을 꼭 집회현장에 데려가줘. 교양시간엔 차별받는 소수를 배제하는 충격적이고 열악한 구조를 꼭 알려줘. 요즘 누가 운동을 꼭 집회에 나가서 팔뚝질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냐는 말이 있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운동은 명상처럼 조용하거나 입었다 벗을 수 있는 패션처럼 세련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 욕지꺼리와 고성이 오가고 때론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 지금 이 순간에도 펼쳐지고 있지. 울분을 못참아서 이를 꽉 물고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는 그런 현장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꼭 말해줘. 그러면서 한편으론 아이들을 잡고 있는 손의 온기를 잃지 않기를 바래. 천진난만한 웃음과 말 안듣고 짜증내는 한숨과 토요일 하루의 활력이 느껴지는 계절의 공기를 동시에 기억해.
토마토학교의 활동이 운동이 되려면, 여전히 차별받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해. 그리고 난 그 사실이 지금껏 토마토학교를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라고 믿어.
새해 복 많이 받아 윤기야. 그동안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써주어서 고마웠어. 올해도 잘 부탁해.
2022년 1월 23일, 현준.